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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는 삶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특히 이번에 고소를 또 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밑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다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는 것같아 자료를 더 찾아봤는데, 이하늘과 김창렬이 도를 많이 넘은 것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언론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박치'라는 언급 때문에 고소하게 됐다는 듯이 끌고 갔다.

 이번에 추가고소도 '또'라는 단어와 '네티즌', '시선변화', '좀 심했다' 등으로 어찌된 일인지 중립적인 보도보다는 이하늘의 편을 드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연예계에 오래 있던 사람이고 다시 돌아올 사람이라는 뜻인가? 잘 모르겠다. 요즘은 불특정다수 중 특정사람들을 지칭할 때 '네티즌'이란 단어를 쓰는 걸까? 편향된 기사를 쓰기 쉬운 세상이다. 언제나 '댓글'은 여러가지 의견이 달리니까 그중 자신의 기사에 맞는 '네티즌'을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내가 봤을 때 박정환이 심한 것이 아니라 이하늘이 심했던 것이다. 쌓이고 쌓이다가 터진 일이라는 것을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김구라와 같이 찍은 영상을 보고 느꼈다. '그친구'라는 말을 이하늘이 교묘하게 사용해서 일까?

  '친구'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친구를 범죄자로 소개하는 사이라면 친구 사이라고 볼 수 없다. 사기는 분명 우리나라 법에 의해 처벌받는 범죄이다. 만약 박정환의 주장대로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재미를 위해 말을 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박정환의 고소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박정환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다면, 박정환이라는 사람은 이하늘이 말하는 사람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를 사건의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그리고 방송날짜로 봤을 때, 이미 박정환은 참을 만큼 참은 것으로 판단된다.

 추가고소도 합당하다. 첫 고소당시 발생하지 않은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까짓 손해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많은 네티즌들이 박정환이 심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엄청난 이미지손상을 입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데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춰진다면 당사자는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그리고 나의 추측인데 이런 모든 소송들이 제지의 효과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선을 넘은 사람은 또 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과조차도 그런 '사과'를 한 이하늘이다. 그런 '사과'를 받고 소를 취하한다면, 정말 바보인 것이다.  만약 누군가 '돈'을 준다고 해놓고 '돈' 대신 '똥'을 준다고 아 '돈'을 받았구나 라고 판단하고 고마워한다면 바보인가 아닌가? 취하를 하는 동시에 이하늘은 '친구'에게 '또' 몹쓸짓을 하게 된 것이 된다.
 
 어떤이는 이하늘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방송이 이하늘이란 사람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미 한번 겪었기 때문에 더 조심했어야 하지만, 그런 기미가 안보인다. 한번은 실수라도 두번부터는 의도적이다.

 박정환이 꼭 끝까지가서 진실을 알고 싶다. 과연 박정환은 '박치'인가?  '미안하다 그래도 넌 박치야'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박치'로 판결나지 않을까?

 그리고 또 '친구'란 호칭 하에 사람을 이용한 사람들을 조금 봐서인지 박정환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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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은 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게 된다. 여러가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글들이 달리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중에도 현 시대, 정부, 경제체계에 대해 대안이나 해결책이 없는 불만만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모든 재앙이 그것에서 시작한다는 듯한 표현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과연 사회는 이상적으로 흘러갈까?

 내가 원래 부정적인 사람인지는 몰라도 이부분에 관하여는 정말 부정적이다. 왜냐면 대안이 있고 그것이 더 쉬운 일이고 더 효율적인 일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들은 한번 정착되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인간사회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희생을 받아드리는 사람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책이나 티비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있지만, 전체 사람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숫자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에서 희생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이들의 숫자는 자연의 섭리인지 모르겠지만, 많다. 다행일 것이다. 숫자도 적었다면, 이외의 사람들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다.(신경쓰는 사람들도 있었을지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신경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모든 문제들을 다 신경쓰고 있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 사회는 불완전하니까... 당연한 것인지도..) 숫자가 많다는 것은 힘이기 때문에 또 어느 정도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숫자가 적은 집단은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겠지만, 그 작은 숫자가 의미있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끌어안아주려고 하겠지..)

 여기에도 문제가 있긴 하다. 보통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이용당하기 쉽다. 많이 알고 예측할 줄 알고 주어진 모든 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라고 불리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동당하기 쉽다는 것인데, 정작 본인들은 이용당하는 지 모른다. 알면서 남 좋은 일을 무임금으로 그렇게 열심히 해준 사람을 본 적없다.(여기서 무임금이라고 표현했지만, 대가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의가 이루어졌다는 상황이, 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진실로 도움이 되었다는 기분이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실제 뜻이 있고 그것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 있는 가운데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은 일이다.

 바람직하고 모두가 잘 살게 되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니까 그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봐 온 대부분의 경우는 억지이고 책임이나 피해를 다른 쪽에 전가하는 쪽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려스러운 부분은 전가시키려는 쪽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암묵적으로 붙는다는 것이다. 더 가졌으니 더 내놔라 하는 논리인데, 사람의 가장 간사한 부분이다. 본인 속해 있는 그룹을 위해 어떤 이유를 다 갖다붙인다. 실제 잘못되고 있는 부분을 고쳐야 하는데 이 부분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 억지를 붙이는 것이다.(내가 봤을 때,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더 가진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재화를 사용해서 인류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이여야 하는데, 옛날에는 전쟁으로 빼앗는 자가... 모략으로 남을 속여서 빼앗는 자가... 돈을 주고 사는 자가... 돈놀이하는 자(기준이 애매하긴 하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돈놀이인가는...)가 더 가진 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어글어져 버린 것같다.)

 더 가진자가 선의로 내놓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더 가졌다는 이유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사람들은 더 가지기 위해서(물질, 명성, 재화, 평화, 안식 등) 살고 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이 경제활동(더 늘리려는 행위)을 하고 있다면, 내면에 심각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주장을 했던 자가 자신이 정했던 더 가졌다는 기준을 백원의 가치라도 넘겼을 때, 빼앗기려고 하겠는가? 없을 때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럴 것이라고...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장실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물론 지금 이야기한 것은 정당한 의무를 져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탈세나 불법으로 가진 자는 당연히 논외이다.(이에 사람들은 가진자에게 합법적으로 더 가져오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대안.. 해결책.. 을 찾기 위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다. 사람들이 변해야 하는데 나조차 이렇게 변하기 어려운데, 누구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 있을까? 살면 살 수록 사회의 잘못된 부분과 나의 잘못된 부분이 보이는데... 근본적 문제라 해결하고 진행해야 할 것같은데,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 또, 사회.. 나.. 뭉뚱그려서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하나 잘게 쪼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분명 아무리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집단이라고 해도) 인간쓰레기는 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각각의 경우에 맞춰서 처리해야하니까 말이다.

  결론은 "내 자신이 선정적 제목의 뉴스기사에 낚여 댓글까지 보고 있는 한심스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게 클릭부터 하지 말자."인데... 왜 이리 힘들까? -_-; 그리고 그 쓰여있는 댓글(대안없는 비난 등)이 북한의 선동인지 다른 정치세력의 선동인지 단지 사회적 투덜이의 푸념인지 몰라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신이 그런 위치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사회적 투덜이가 되는 것은 더 싫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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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String *filePath = [[NSBundle mainBundle] pathForResource:@"XXX" ofType:@"YYY"];

[NSData dataWithContentsOfFile:@"XXX"]같이 WithContentsOfFile가 붙어있는 method는 그냥 파일명을 써줘도 잘 읽어왔는데, NSData에서는 안그랬고, 위의 absolute path가 필요했다. 왜일까?
단순한 실수? 아님 우연히 다른 것들은 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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